[펌]우리 큰 곶(串)과 왜정이 자자(刺字)한 半島

일본 한자말인 ‘반도’가, 일본이 우리나라를 낮잡아 보려고 쓰기 시작한 말임을 밝히는 글이 있어 옮겨 옵니다.
본디 있던 데 : http://www.coo2.net/bbs/zboard.php?id=con_4&page=1&sn1=&divpage=4&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4700


   우리나라에서 半島라는 말의 시작은  조선왕조실록에서   고종 때로,  그 당시 ‘한일 의정서’ 에서 1건, ‘일한합방 성명서’ 에서 1건, 기록한 사실 외는 串(관, 곶)으로 2,075회나 기록됐을 뿐 倭者 가 흉계를 꾸미기 이전에는 반도라는 개념조차 없었고  불쑥 튀어나와 뾰족한 그 곳을 ‘뚫고 나가다’ 라는 뜻으로 串(관=곶=압습狎習=skilled )이라고 했기에 확인하려고 승정원 일기를 봐도 반도라는 글은 흔적도 없고 곶(串)만 2,428회나 기록 되었다우리들  선조께서는 倭 者들이 반도라고 라고 하는 그런  땅 모양을 보고,  옛부터  ‘곶’ 이라고 했지만  전라도의 고흥이나 해남은 串이라고 하지도 않았으니 용도에 따라서 삼방이 막혀  목장이 될 듯한 땅을  串이라고  했다

그러나  태안과  여수반도는  너무나 귀 익어서   두 곳만 더  검색해봤으나 역시나   安眠串과 麗水串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옛 부터 반도라고  했으면 실록에서 첫 장부터 반도라는 글이 기록됐을 것이라고  공부한 결과는  뜻 밖에 우리가 무지할 때  日帝가 한국 격하의 반도라는 말을 만드니-친일  매국노들이  왜정에게 복속의  표현으로  개 꼬리로 살랑대며 『대ㅇㅂ제국의 반쪽 섬』이라고 스스로 한반도라고 외쳐대며  ‘소년 한반도’라는 월간 소년 잡지까지 만들어 그 모르핀 같은 반도라는 말을 『신문을 읽을 수 있는 학생 등 젊은 識者』들의 몸 속에 먼저 주사
했다

이런 고약한  반도라는 말이  어떤 경위로  익숙한 말이 되었는지  아래에서  그  경위를 세밀하게  색출 해 보았다

註ㅡ 아래와 같은 주소들은  찾아보기 쉽게 모두 모아서 이 글 끝에 기재함

이 주소는 반도라는 말이 틀렸다는 주장

http://cafe.daum.net/mookto/GbHv/552

반도  라고 기록한  역사 (조선왕조 실록과 승정원 일기에서 찾은 기록 ) 는 3 건 뿐이다

1-이지용의 한일의정서————1904 년  1건                              실록의 기록은 1, 3이고 2 는 소년 한한도

2-소년 한반도, 창간————–1906 년–대중에 공개

3-이용구의 일한합방성명서——–1909 년   1건

우리 교과서에는 누가 먼저 반도라고 썼는가 ? 의구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바로 이병도이다

위를 일일이 검색해보니 倭者가 지랄하기 전에는 우리 국토를 말하며 我朝鮮, 我國土라고 했다

과거에  삼국사기와  같은 위조 책자에 倭者가 변조한 반도라는 글이 혹 있더라도 조선 왕조 실록과 연관해 보면 삼국사기에 잇따른 우리 국사가 된  실록에서는   우리 큰 곶 조선을 왜적이 구석구석 유린할 선조 때 까지도  또 그 후에도  반도라는 글은  그 흔적도 없었고  戰史마다 곶(串)을 썼기 때문에 위조라고 곧 알아 볼 수 있다

위 친일파 들이 억지로 주입시키지 않았다면  자기가, 그 부모가, 그 조상이, 살았던 우리국토를 누가 반 쪼가리 섬이라고 했으랴?  그런데 그런데 大 字를 넣은 大韓이라는 國名에 倭者가 너희들은 겨우 반 쪼가리 섬이다 라고,  우리 이마에 반도라고  頭文字를 썼다

곧 치욕 중 최상급인 범죄자의 이마에 칼로 犯罪 名을 쓴  자자묵형을 당한 꼴이 되었다

(刺字墨刑이란-이마에  도둑이면 도둑이라고 칼로 문신하는 형벌-실록에 刺字刑은 153건, 墨刑자자 7건, 臂膊 자자12건 )

즉 임진년에 왜구들은 우리 귀를 베어간 자들이고 이번에는 옴짝달싹 도 못하게 한국의 이마에 刺字해서 만천하에 조선은 일본의 반 쪽 섬임을 확인해 두었다 이를 좋다 라고 그대로 따른 매국노 들이라면 우리는?

해방이 되어 민주공화국이라고 하며 헌법을 만들 때나 지금이나  위정자들이  반도라는 말에 전혀 무관심하고 그 부당함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보이나- 실은 알고도 서로 먼저 입을 열지 못하는 듯도 하다

또한 나쁘게 보면 친일 세력이 그대로 국회에 남아서 반도라는 두문자를   일부러 넣었다 라고도 볼 수 있다

『 2009년 6월에 중앙일보에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에서 반도를 거론했는데 정치인 중 한 사람도 이 글을  못 읽었을까? 이런 의심이고  헌법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라고 헌법 제 3조 영토조항에 한반도를 썼는데 그 초안을 검토한 당시 국회위원들? 위정자 들 ? 몸체만 해방되었고 정신은 모조리 日帝 그대로 였다

이승만 박사 자신도 한반도가 무슨 소린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과연 한민족을 대표하는 위정자였던가?

헌법초안이 올라왔을 때 그 조목조목에서 잘못된 글이 있는가 ?   또 수 십만 명이 헌법을 공부하고 고등고시를 치렀고 판사 변호사가 되어 말꼬리 잡고 재판을 한다 그런데도 아무도 한반도라는 말은 연구도 하지 않고?

헌법을 더 열심히 연구한(?) 학도가 판사 변호사가 되었다 참으로 기막힐 노릇이다』

그런데 실은  半 섬이라는  말은  육지에서 떨어지면 무조건 섬일 뿐 반의 섬이라는 어불성설은 숙어형성 이치와 맞지 않다

만약 우리 땅이 반이 육지와 연결되고 그 나머지 반쪽이 섬이라도 陸과 島의 국가일 뿐 半 섬나라는 아니다

이치에 닿지않는 숙어를 만든 倭者는 조선에 야욕을 꿈꾸었다고 하지만  반도를 논쟁도 하지 않는 우리들의 말 꼬리 잡고 늘어지는 말 재주 꾼 선수 들은 더 이상하다

연설자는  연설마다  반쪼가리 섬의  한국인이라고 자랑하 듯 한반도라고  모두 신나게 쓰는 것 같다?  뜻도 모르는 모양이다

①우리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②우리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①②는 뭐가 다른가? 어느 말이 애국적인가?

꼭 한반도라고 한마디  해야 먹고 살 수 있는가 ?

한반도라는 말을 써라는   왜정시대의 명령문이니    해방이 되어도  그 추종자들은   헌법 제 3조에 한반도를  반드시   넣어야   위신이 선다  ?

*****우리는 바다로 돌출된 모양을 보고 왜 串(곶)이라고 했는지?*******

우리말 곶(串)의 정의를 보니 ‘뚫고 나가다 ‘이며 이중 뚫는 것은 串이요  뚫고 지나가는 것은 貫이요 貫通이다

물상을 연달아 穿(천-구멍을 내는 것)은 串이며 그 구멍을 통과한다는 글은 꼿꼿한 貫 이다

http://www.world-skills.kr/ws/index.do

위  주소의 국제 기능 올림픽 대회에서 우리 국민은 금메달 나라 임을 자부하고 있고 누구나 익숙해 지려고 노력하면  세계에서 으뜸이 될 수 있는  串하는 민족으로 ‘뚫고 나가다’ 에 열심하니 월드 스킬스 나 올림픽 등에서 큰 성적을 거두는 우리다

해서 조선 때는  串에 있는 말을 사육하며 이곳에서 講武(강무)를 실시하여 군사들에게 무예를 익혀 전쟁에 대비하여 활 쏘기를 연마하여 그 시험장으로도 했다 (아래 지도 옆에서  서울 성북구 석관동을 설명했다)

해서   歌舞에 익숙한 소년자제를 串자를 써서 串童이라고 했고  그  압습을 연마한  광대도 지금은 최고 인기다

우리선조님들께서는 명석하시기를 세계에서 으뜸이시니  세계유일, 전대미문의 문자까지도  발명하는 민족이다

串에는 압습(狎習)이라는  또 좋은 뜻이 있으니 압字는 친압이고 親狎(친압)은  친근해지려는 마음  習은 연습에 습관이니 누에가 고치를  만들고 뚫는 노력과 같다  누에 견자가 참으로 묘하다

사전의  惡民之 는 무엇인가?  우선 읽으니 대단히 기분 나쁜 말 같으나 好民之 所好 – 惡民之 小惡이니『백성들이 좋아는 것을 따라 좋아하고, 백성들이 싫어 하는 것을 따라 싫어  하는』 부모이니 『=此  父母之 實也』-어린이가 혼자 강가에 몰래 가서 수영하면  불상사가 자주 생기니 모든 부모는 자기 자식은 그런 위험한 곳에  보내지 않으려하니 백성이 싫어하는=惡民之이니  압(狎)은 이를 성취하려는 우리 젊은이 들이고 어릴 때   용감하게 그 위험을
뿌리치고 강가에 또는 큰 못에, 또는 더 큰 꿈으로는 무작정 上京? 이 또한  친압하려는  즉 무엇인가 발전하려는 아이다 –   이것이 친압이고 이 압을  열심히 習(반복 연습, 반복 자습, 반복 훈련)한다는  串자라는 멋진 말이다

지금 우리시대에서 필요한 親狎은 狎習이니 영어의 串은 skilled, bill, let pass이며  꿰다 관,  땅이름 곶 , 익숙해질 串이라고 했으니  영어로 풀어보면 더욱 맘에 끌리는 숙련『=압습= skilled 』 이 串이다

압은 비록 짐승의 犭과 甲이지만 狎客, 狎近, 狎邪, 狎愛, 狎逼 등 대체로 버릇 없다 의 뜻이니 부모가 하지 말라는 惡民之를 용감하게 해낸, 최선을 다한 배우가, 골퍼가, 무용가, 음악가, 운동 선수, 과학자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친 경우에 큰 일을 해낸 멋진  자랑스런 남녀가 부지기수인  우리다

한문을 모르는 촌부도 사전을 조금만 뒤적여 보니 멋진 串자를 알 수 있는데 어찌 倭者 들이나 이병도가  몰랐겠느냐 고로 왜정은 우리가 무심한 가운데 산 꼭대기에 쇠못을 박 듯 우리가  숙련하는 곳, 민족의 기개(氣槪)인 곶(串)을  즉 우리의 대한민국의 땅 모양인  곶, 串을 산 골자기라는 아주 작은 岬으로, 또  반도 보다 작다 라고 왜곡하여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곶’ 지명을 모조리  장기갑이니 장산갑이니 등등으로 개명해 가며 쳐 박아 버리고 반도라는 신종 어를
만든 왜정이었고 이를 충실히 따른 이병도 이용구 등 친일 매국노들이며    이 왜곡을 느끼지 못한 듯 우리 위정자들도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라고 비록 —–반도라는 말을 넣었으나  금수강산이라고 한 듯하다(이어령의 글)

安眠串의 지도를  보면 남쪽이 뾰족하지 않고 우리 大곶 대한민국의 남쪽 같이 전체적으로 불쑥 바다로  튀어나온 땅이며  안면도를  따로 보면 길게 뻗친 모양이며-뾰족과  전혀 상관없는 여수串도 있다

고로 곶이 반도 보다 작다라고 쓴 사전은 倭者가 그려놓은 지도가 모두 바다 쪽으로 뾰족한 곳은 岬이라고 그린 왜색이 우리사전에 침투한 것이다 (장담하건대 수년 내로 奇生聖音은 백제왕자의 이름이라는 사전이 분명 나타날 것이니 倭者들은 뭣 훌치기 할 것 없나 이 땅을 주시했다가 욘사마가 태왕사신기에 출연한다니 그 제작진에 막대한 금액을 솟아 부었다는 소문과 같이 우리 어느 출판사에서 사전이나 지도를 만든다는 소문을 들으면 반드시 동해를 Sea of J~  이라고 인쇄해 준다면 몇 억 엔을 주겠다라는 제의를 해올 것이니 이런
사례는 북경올림픽 때나 세계지도에 동해를 지우고 Sea of Japan 을 만들기 위해서 수십억 엔을 뿌리는 者들이다

기어코 뾰족하다(尖)라고 왜곡하려면 안면도의 최남단 지명인 영목을 쓰고 영목岬 이라고 해야 뾰족하게 보이나  岬(=산꼴자기)도 아니며 안면도는 그저 길게 뻗은 전체 모양이며 그 實例는 포항의 호미 곶(虎尾串)은 본래 호미라는 지명이 없고 長鬐縣(장기현)의 끝부분인데도 장기현 이름 따라 장기곶 이라고 말하며 여기는 과거 목장으로 장기현 㐑背串(돌배관=동을배관=冬乙背串)이라고 하며  군사용 우량 馬를  세종 때 부터  사육한 목장인데도 串이라고 하였다  끝은 뾰족하나 串 전체는 목장이
될만한 넓고 평평한
곳이다

또 바다로 통하는 海門이 훤히 보이기에 볼록한 부분의 주변을 돌 벽을 쌓아 배를 정박하기 쉽게 하라는 기사도 있으니 串의 전체를 보면 바다로 뚫고 나가다 를 강조했을 뿐 크다 작다는 뜻과 무관하고 산 골자기 岬도 아닌 목장 또는 사냥터로 삼 방이 막힌 곳이고   활 쏘기한  시험장이며, 강무했으니 군사훈련소 등 바로 狎習場(=연습장)이기도 했다

바다라면 삼 방이 바다로 둘러 쌓인 곳으로 우리 선조님들이 이를 먼저 串이라고 하셨다

곧 삼방이 막혔으니 뚫고 나가야 된다

『註-옛날의 항구는  배가 만조를 이용하여  육지에서 높게 올라 앉을 곳,  바닥은 모래 위에 통나무를 사용하여  더 높게 올려 놓았다가  만조 때 만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고로 串에서 어느 위치에 파도가 약하고 모래나 진흙이나 자갈이 있는 해변이 있는 串에서는 항구의 기능이 가능하다-본래  浦가 항구이다』

왜자들이 말하는  岬(뾰죽한 곳)은 串이 아니며 뾰죽한 곳이고 우리는 산허리로 알고 있으니  산꼴짜기라는 우리다

또 陽城縣 槐台吉串 所는 바다와 상관없는  안성시 공도면이 위치했던 市中 도심지이며 이곳에 옛날에  목장으로 좋은 위치,  牛馬가 도망갈수 없는 三方이 절벽이나 개천으로 즉 입구만 막으면 牛馬가 도망갈수 없는 자연 울타리가 있는 지형이라 이를 괴대길의 串이라고 했고–어떤 때는 槐台吉串 牧場이라고 했으니 이 기사의 뜻을 풀어보면 양성현에 있는 괴태길이라는 곳에, 串所(우마가 도망갈 수 없는 곳)가 있다는 말이다

이런 곳을  串=岬으로 풀어 串의 어원이라는 하니 친일에 미친 학자들이다

서울의 箭串=살곶이 다리 부근과 호곶이(壺串호곶-지금의 都羅山驛 부근으로 둘레 30리의 임금의 사냥터) 기사로 각각 451회와 27회의 기사를 보면 왕의 사냥터를 串이라고도 하였고 그곳에는 목장도 있고 삼방이 강으로 막혔다

전관은 서울 전관천의 하류 살곶이 다리 주변을 말하니 서울의 뚝섬은 말할 것도 없고  성수동과 그 북쪽등 광대한 지역이니 이곳은   500여結의 평야이니  이런 곳을 어찌  岬이라고 할 것인가

동구릉  쯤에서 西로 전관천까지 東으로 왕숙천까지 군사를 풀어 성수대교 쪽으로 사냥감을 몰아 넣으면 곧 화살 곶이 끝 부근인 살곶이 다리 쯤이나 뚝섬 沙場에 도망 온 멧돼지를  임금은 馬上에서 거저 활시위만 당기면 적중할 것이다

(1950년대에 성동역 출발 뚝섬  행 기동차는 똥 파리 수천마리와 같이 질펀한 습지와 우거진 갈대 숲과 미나리 밭을 지나 뚝섬 유원지에서 내린다

이 기동차를 타 봤다면  사냥을 짐작할 수 있다- 갈대 숲에서 매 사냥을 한 듯한 기사가 수 차례 있다)

이곳은 개발 이전에 전관천 하류가 삼각주 지형이라 장마 때는 한강 물 수위가 높아 청계천과 중랑천 물이 한강에 들어 갈 수가 없으니 수해를 당하는 지역이었다

그리고 親, 日 숭배자들은  串을 반도보다 작다라고 하여 온 사전을 串=岬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섬은 반도 보다 크다는 말이니 독도는 서울  성북구 석관동(石串洞)보다 작고, 울릉도는 箭串 보다도 작다

무슨 사전이 이 따위 무책임한 사전인가?

사전은 일본의 岬 따위를 ‘串 곶’ 으로 풀어 道岬寺가 있는 ‘산골짜기 정도’ 를 곶이라고 푼 엉터리 사전이니 右 지도는 일본의 본 섬 최북단이니  북해도의 동남쪽 바다건너 남쪽 知床岬이며 조선이 地名을 썼다면 知床串 知床岬 이며 조선이 지명을 定했다면 知床半島라느 그 全 구역을   知床串 이라고   했을 것이나 우리는 岬을 갑(岬)→ 接連貌 嵑 岬(접연모 갈 갑)이며 嵑(갈)은 特立孤山(특립고산)=산은 우뚝하고 외롭다 라고 따로 구별했으니 岬은 鷄龍山岬寺, 伽倻岬, 琚瑟(거슬)岬山, 扶蘇(부소)岬, 首岬山, 道岬寺,
명올갑령(明兀岬嶺), 新都岬寺 등 16회를 쓰면서  산의 험준함과 산 골짜기의   그 가운데를 갑이라고 했다

『註-명올갑령은 평북 영변에 있고 素月 詩  『영변에 약산 ‘진달래 꽃’ 아름따라 가실길에』의 시정이 우러난 항아리 (발 뒤꿈치Ω,  말의 등줄기 兀 )같은  산등성이 (480m)가  평평하게  성벽을 이룬 예부터  군사요충지로 6.25때 남침한 인해전술의 오랑캐와 싸워 패전한 곳이기도 하다』 아래 주소의 이미지

일본의 岬은  바다로 뾰족이 튀어나온   岬이고  우리의   岬은 절 터, 또는 군사 요충지이기도 또는 대단히 험난한 산 골짜기인데  우리나라 지도와 교과서에서도  일본을 따라  岬을-친일 매국노 들이 풀어놓은 그대로 써서, 串이 사전을 바꿔 가면서 관 =갑이라고 온 책을 모두 바꿔버리고 語源까지 개조 했다

이병도가 岬과 串(전관=살 곶이)을 어찌 몰랐겠나?

또 한문을 조금 공부해 보면 우린 옛 부터 한문학이 저들을 능가하고도 중국이 깜짝 놀라는 우리 한문학에서 串을 반도나 岬에 비유하는 어불성설과는  대조조차 불가한 우수한 뜻이 포함되었다

해서 1911년에는 드디어 전관천(살곶이로 내려오는 川名)을 중랑천이라고 개명하며  살곶이를  역사에서  빼 버린 왜정과 이병도 따위라는 말이다 (이 글에서 이병도는 조선사 편수회의 촉탁했던 이병도에 한함)

串이 나쁜 글이라면 수 많았던 석학들이 찾아내어  왕의 사냥터 名으로 부적하다고 옛날에 이미  고쳤을 것이다

penin…   이니 외국어를 보면

백제최초의 비희도

왜자들의 사전이 우리 땅에 없을 때  串은  peninsula와 무관하다  peninsula=반도라고는 절대 풀 수 없다  위 사전 毌=관

참고 ☞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42> 반도인 ① ‘을 보면  당시 주일독일대사관 측에서 반도란 말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주먹진 팔뚝모양? , 뾰족구두의 앞창? 에 차일까? 조선실록에서  串자가   대한민국의 모양과 위치라고  느낀  다까모리는 이 串 을 덮씌울 계획을 했을 것이다(이어령 기사)

한편 1890년대에 서양, 또는  일본에서 제작된 세계지도를 처음 본 친일자들은 이미 일본이 만들어 놓은 지도에서 우리 땅 닮은 바다로 내민 지형에 이미 일본이 반도라고 그린 지도를 보았을 것이며 일본은 우리와 淸을  겨냥도 했겠지만 그들의 유치 찬란한 思考로 봐서 자기들 땅이 섬이니 세계지도의  페닌슈라를 모조리  섬 보다 한 단계 낮게  해석해서 반쪼가리 섬으로 인쇄했을 것으로 유추해 볼 수도 있으니 당시는 청, 러시아 까지 물리친 왜구 후손들은  하늘  높은
줄 몰랐던 그런 시대이고 우리는 약소국 시대라 반쪽이 섬이라는 한국격하의 조작 글자를  비판을 할 우리 입장도 아닌 그 때 이를 시비할 학자가 있을 수도 없고 비록  반도의 부당함을 알았어도 이미 인쇄된 지도를 들먹이려면   감옥이라도 갈 애국 투사가 아니라면 입을 다물 수 뿐이고 ‘少年韓半島’ 는 계속 홍보가 되어 한국을 반쪽 섬이라고 하는데 倭政(왜정)이나 역적들이 전혀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36년동안  실록을 읽을 기회를 잃은 우리는 串에 대해서 무심한 가운데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倭者가 만든 지도를 그대로 답습한 민족의 반역자,  그들이 퍼트려 놓은 반도라는 말을, ‘삼천리 半島 금수강산’하면서 이승만 박사부터 애창하셨으니  우리 모두는 말로만 反日 했고 실로 그 말에 따른 실천은 전혀 염두 하지 않았고 『백두산 뻗어나려 반도 삼천리- 무궁화 이 동산에 역사 반만년- 대대로 예 사는 우리 삼천만~』이라면서 1931년 동아 일보 신춘문예 창가부 당선, 이은상 작사-현제명 작곡 ‘대한의 노래'(처음은-조선의 노래)를 짓기도 했다

이은상은  반도도 아닌 우리나라를 왜 반도라고 했을까 ? 동아일보의  편집국장 쯤이  삼천리 앞에 반도라는 말은 넣어라 라고 명령했다면? 이도 저도 생각 없이 마구 따라 부른 촌부도, 우리 국민 모두도, 한 통속으로 부끄러운 唱歌(창가)를 마구 불러댄 해방 직후였다

백두산이 뻗어 내려  삼천리가 되려면    반쪽 섬 앞에 바다가 있으면 뻗어 내릴 수 없다

반쪽 섬 안에서  역사가 반만년?  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지은  이은상은 아닐 것 같다

○ 500결은 얼마나 넓은가?

태릉 동구릉 以下가 전관일 것 같다(先代 왕릉을 사냥터에서 제외 했을 것이고) 麗水串은 전관 보다 훨씬 더 넓다

또 여수관의 넓이 비슷한 고흥(高興)은 한 郡이고 인구가 많으니  목장을 만들 수 없어 串이라고 안 한듯 하다

고로 땅 모양을 보고 꼭 관이라고 하지도 않았고 용도에 따라 串이라 했다

전 국토의 약 70 % 가 산림지대인 우리나라의 6등田은 산악의 계곡에 있는 천수답으로 소출이 적어 한 마지기에  쌀 반 가마도 소출이 불가한 논도 있었다는 그런 경우를 감안하여 위 그림 정도는 돼야 500결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이런 6등전 논을 옛날에는 작답(作畓-산 비탈에 논둑을  ‘돌로 쌓고’  논바닥에는 흔해빠진 ‘자갈을 깔고’  둑과 자갈 바닥을 진흙으로 매워서  층층으로 만든 그런 논이 고기 비늘 모양으로 층층을 이루기도 하니  한 두 평-個鱗에 得水)한 우리의 과거이며 이 귀한 산골 물을 서로 많이 가두려고 아래 윗 논 주인끼리  삽 싸움이니 드디어  살상 하기도 하며 귀한 산골 물을 겨우 가두어 모심기를 하여 하늘에 풍년들 게 하소서 하고 하늘만 쳐다 봤다

그런데 그 해 여름은 덥고 가물어  이 농부는 가을 부터 초근목피로 겨우 살아났다

이런 때도 왜자들은 공출로 곡식을 착취하여 태평양 전선에 보냈다

불암산, 용마산(아차산) 등의 비탈 논이 모두 몇 결이 되는지 알 수 없어 이모 저모 생각해 보았다

특히 아차산의 북쪽은  그 산자락 끝이 태릉에 응하고 남쪽은 천호대교 까지니 그 산골에 논이 몇 結이나 되었는지?

본래 전관천의 상류에 中梁浦라는 명칭이 있었으니 1911년 일제의 의하여  中梁을 핑계 삼아 中浪川이라는 새 川名을 만들고 전관천 이름은 거론 없이 우리 역사에서 삭제했다

한강 상류의 영월 동강이 한강의 江 名이 될 수 없다 와 같다, 倭者들의 못된 소행이다

주소

참고 ☞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42> 반도인 ① ‘

반도라는 말을  써도 되는지요 – http://cafe.daum.net/mookto/GbHv/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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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우리 큰 곶(串)과 왜정이 자자(刺字)한 半島에 1개의 응답

  1. 최상택댓글:

    이 글을 쓴 우리역사의 비밀 회원 최상택(1)인데 우연히 이 글을 보니 우리역사의 비밀 사정에 의하여 그림이 모두 빠진 미완성 글이기에 마침 그 원본이 보관되어 있으니 이 사이트에 가입하면
    빠찐 그림을 올릴 수 있는ㅁ지 문의 합니다

    • 깨몽댓글: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손수 발걸음하셔서 글 남겨 주시니 고맙습니다.
      원본을 제게 보내주시면 제가 그대로 올리도록 해 드리면 괜찮을지요?
      제 누리편지주소는 spamdeny at gmail 점 com 입니다.
      혹 다른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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